죄책감과 수치심은 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끌까
자기의식적 정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수십 년 동안 일상에서 하나로 엉겨 붙은 두 상태를 구분해 왔어요. 죄책감은 행동에 관한 감정이에요. "내가 잘못했어." 수치심은 나 자신 전체에 관한 감정이고요. "나는 나쁜 사람이야." 단어 하나의 차이지만, 두 감정이 이끄는 행동은 정반대예요.
"내가 잘못했어"에는 빠져나갈 길이 있어요. 전화하고, 인정하고, 다시 하고, 돌려주면 돼요. 하지만 "나는 나쁜 사람이야"에서는 빠져나갈 길이 없어요. 하룻밤 사이에 나 자신을 다시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수치심은 바로잡을 힘은 거의 주지 않으면서, 사라질 힘은 넉넉히 줘요. 이메일을 열지 않고, 다시 전화하지 않고, 첫 운동을 빠진 뒤 두 번째 운동에 가지 않는 식이죠.
"내가 잘못했어." 행동에 초점을 둬요. 질문은 "무엇을 고칠 수 있지?"로 좁아지고, 답도 있어요. 전화하고, 인정하고, 다시 하면 돼요.
"나는 나쁜 사람이야." 나 자신 전체에 초점을 둬요. 질문은 "이 일이 있고 난 뒤 나는 어떤 사람이지?"로 커지고, 고칠 것은 사라져 숨는 일만 남아요.
연구에서 죄책감을 느끼기 쉬운 성향은 관계를 회복하는 행동과, 수치심을 느끼기 쉬운 성향은 회피·부인·방어적 분노와 연결돼요. 이런 연결은 여러 연구에서 반복되지만, 어디까지나 연결이지 판결은 아니에요. 실제 삶에서는 두 감정이 거의 늘 함께 찾아오고, 보통 중요한 건 "어느 쪽이냐"가 아니라 어느 쪽이 더 큰지예요.
수치심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때 나타나는 모습
그 순간 알아차리기는 어려워요. 얼굴이 화끈거리거나 눈물이 나는 모습으로 찾아오는 일은 드물거든요. 대개는 감정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가벼운 어색함처럼, 낮은 음량으로 작동해요. 바로 그곳에서 결정이 내려져요.
수치심이 보통 대신 결정하는 음량
이 정도 음량에서는 밀어붙이거나 따지지 않고, 그럴듯한 이유를 슬쩍 내밀어요. 그래서 수치심이 내린 결정은 낯설게 느껴지지 않고 상식처럼 느껴져요. 수치심이 자주 취하는 네 가지 모습이에요.
- "지금은 안 돼"게을러서 미루는 게 아니에요. 그 일에 손을 대면 내가 또 잘못한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에요. 멈춘 시간이 길어질수록 다시 시작하기는 더 어려워져요.
- "완벽해진 다음에"일이 완벽해지기 전에는 보여줄 수 없어요. 그렇게 평가받는 자리 자체를 없애 버려요.
- "나한테 필요하지도 않아"원하는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 욕구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 버려요. 원하지 않았던 거라면 실패한 것도 아니니까요.
- "내 잘못이야"부드러운 지적에 날카롭게 반응하는 모습이에요. 공격하면 시선이 나에게서 상대에게로 옮겨가고, 잠깐은 마음이 편해져요.
네 가지가 모두 주는 보상은 같아요. 즉각적인 안도감이죠. 안도감은 결과보다 먼저 찾아오고, 기억에 남는 것도 바로 그 안도감이에요. 이메일을 열지 않았더니 정말 효과가 있었고, 긴장이 내려갔으니까요. 이렇게 감정은 결정을 내리는 기본 방식이 되고, 미뤄 둔 일의 목록은 점점 길어져요.
수치심은 왜 바로잡기보다 회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을까요?
수치심이 내가 답이 없다고 속삭일 때 무엇이 도움이 될까요?
출처
- 수치심과 죄책감을 초점에 따라, 즉 자신에게 초점을 두는지 행동에 초점을 두는지에 따라 구분하고 그에 따른 행동의 차이를 설명한 연구로 준 프라이스 탠그니와 론다 디어링의 저서 《수치심과 죄책감》(2002)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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