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실수, 서로 다른 반응
친구에게 중요한 날을 잊었다고 해봐요. 그다음에는 겉으로 거의 구별되지 않는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날 수 있어요. 한쪽에서는 그 사건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아요. 메시지도 안 보내고, 전화도 안 했고, 친구는 기다렸다는 생각이죠. 다른 쪽에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이 맴돌아요. 이런 일을 겪고도 나는 어떤 친구일까, 나는 늘 이렇다는 생각이요.
이럴 때는 말이 뒤섞여요. 대화에서는 "부끄러워"와 "내가 잘못했어"를 섞어 말해서, 한 문장만으로는 그 사람이 무엇을 느끼는지 알기 어려워요. 대개는 두 감정이 함께 찾아와요. 중요한 건 어느 쪽이 더 큰가예요. 차이는 말이 아니라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서 드러나요.
어제 별일 아닌 일로 딸한테 버럭했어.
그러고 나서 어떤 기분이었어?
내가 끔찍한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어. 저녁 내내 딸을 쳐다보지도 못했어.
다르게 말해 보면 어떨까? 내가 딸한테 소리를 질렀고, 그건 부당했어?
그랬다면 가서 사과했을 거야. 그런데 그냥 다른 방으로 가버렸어.
여기서 전환이 드러나요. 평가가 "나는 끔찍한 엄마야"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하룻밤 사이에 자기 자신을 뜯어고칠 수는 없으니까요. 평가가 "내가 소리를 질렀어"로 돌아오는 순간, 행동이 보이고 그 행동에는 향하는 대상이 생겨요.
평가는 어디를 향할까
심리학자들은 이를 같은 평가가 서로 다른 대상을 향하는 것으로 설명해요. 헬렌 블록 루이스가 1971년에 이 구분을 제안했고, 그 뒤로 계속 유지되어 왔어요. 죄책감은 행동을 겨냥하고, 수치심은 자기 자신을 겨냥해요. 이 두 대상 사이에는 중간 단계도 있어요.
- 이게 바로 나야
- 나는 그런 사람이야
- 내가 그렇게 했어
- 그때 한 번 그랬어
아래에는 구체적인 사건이 있고, 위에는 나 전체가 있어요. 평가가 더 위로 올라갈수록 바로잡을 수 있는 부분은 줄어들어요. 행동에는 향하는 대상과 만회할 방법이 있지만, "이게 바로 나야"에는 둘 다 없으니까요.
그래서 죄책감은 대체로 사람에게 다가가게 하고, 수치심은 사람에게서 멀어지게 해요. 준 탠그니와 동료들은 여러 표본에서 이를 보여줬어요. 죄책감을 느끼는 경향은 사과와 공감에, 수치심을 느끼는 경향은 회피와 방어적 태도, 분노에 연결되어 있었어요. 이는 자기보고와 상관관계에 근거한 결과라서 이런 경향은 일관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에요. 수치심이 항상 파괴적인 것도 아니고, 죄책감이 항상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에요.
대상은 행동이에요. 바로잡고 싶어져요. 사과하고, 다시 하고, 그 사람에게 돌아가게 되죠.
대상은 자기 자신이에요. 사라지고 싶어져요. 눈을 피하고, 전화하지 않고, 화제를 바꾸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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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헬렌 블록 루이스, "신경증에서의 수치심과 죄책감" (1971)
- 준 탠그니와 론다 디어링, "수치심과 죄책감"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