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년에 걸친 여정
- 고대사탕수수가 뉴기니에서 길들여진 뒤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 나갔어요. 사람들은 사탕수수를 씹거나 즙을 끓였지만, 아직 결정은 만들지 못했어요.
- 인도즙을 졸여 단단한 결정으로 만드는 방법이 등장했어요. 설탕이라는 말도 여기서 세계 여러 언어로 퍼져 나갔어요.
- 중세설탕은 아랍 세계를 거쳐 지중해 지역에 들어왔어요. 유럽에서는 향신료만큼 비쌌고 약제상에서 팔렸어요.
- 17세기대서양의 섬들과 아메리카에 플랜테이션이 생겼어요. 가격은 내려가고 소비는 늘었지만, 플랜테이션에서는 강제노동이 이뤄졌어요.
세 번째 대목은 옛 문헌에 나타나는 이상한 점을 설명해 줘요. 설탕은 기침약이자 귀한 향신료로 언급돼요. 약제상이 보관하고, 무게를 달아 팔았으며, 부의 상징이었죠.
네 번째 대목은 중요한 전환점이에요. 플랜테이션 생산으로 설탕은 불과 수십 년 만에 대중적인 상품이 됐고, 차와 커피와 함께 여러 나라의 식생활을 바꿨어요. 이전에는 없던 값싼 열량이 생겨난 거예요.
사탕무와 끊어진 연결고리
두 번째 전환점은 사탕무였어요. 18세기 말에 사탕무에서 설탕을 얻는 방법이 발견됐고, 사탕수수 설탕이 유럽에 들어오지 못하던 대륙봉쇄령 시기에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어요. 그 결과 유럽은 자체적인 설탕 공급원을 갖게 됐어요.
이 변화는 지리도 바꿨어요. 설탕은 더 이상 식민지 상품이 아니었어요. 온대 기후에서 소비자와 가까운 곳에서 생산되기 시작했고, 해외 플랜테이션에 대한 의존도 약해졌어요.
오늘날에는 두 원료가 세계 생산량에서 대체로 비슷한 비중을 차지해요. 최종 제품의 성분도 같아요. 둘 다 똑같은 자당이라 컵 속에서는 구별할 수 없어요.
이 역사는 상품의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잘 보여 줘요. 같은 물질이 약, 사치품, 무역 전쟁의 원인, 노예노동을 부른 계기를 거쳐 이제는 가장 평범한 상품이 됐어요.
스스로 확인해 보세요1 / 2
설탕 결정을 만드는 법은 어디에서 개발됐을까요?
설탕을 대중적인 상품으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요?
출처
- 사탕수수는 뉴기니에서 길들여졌고, 설탕 결정화 기술은 인도에서 발전했어요. 중세 유럽에서 설탕은 고가 상품이었으며 약으로도 사용됐어요. 설탕 가격이 대중적으로 낮아진 것은 아메리카의 플랜테이션 생산과 관련이 있고, 사탕무에서 산업적으로 설탕을 생산하는 기술은 18세기와 19세기의 전환기에 발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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