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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는 어떻게 유럽에 들어왔을까

Miqo 편집팀 · 출처 1개

안데스의 덩이줄기는 어떻게 유럽의 밭에 들어왔을까

안데스에서는 수천 년 전부터 감자를 재배했어요. 지역 품종만 수백 가지였죠. 스페인 사람들이 감자를 유럽으로 가져온 건 16세기 후반이었지만, 먹거리로 들여온 건 아니었어요. 처음 감자들은 수도원과 식물원에 자리 잡았고, 사람들은 예쁜 꽃이 피는 신기한 식물로 바라봤어요.

그다음부터는 일이 좀처럼 진척되지 않았어요. 감자는 벨라도나와 가까운 가지과 식물이고, 초록색 열매는 먹을 수 없으며, 먹는 부분은 땅속에서 자랐어요. 하지만 더 단순한 이유도 있었어요. 유럽에서 처음 심은 감자는 거의 수확을 내지 못했거든요.

안데스, 어느 달이든약 12시간
북유럽, 6월16-17시간

덩이줄기는 낮의 길이가 짧아지기 시작할 때 맺혀요. 안데스에서는 일 년 내내 낮의 길이가 대체로 일정해서 신호가 제때 와요. 북유럽에서는 여름에 훨씬 오래 밝기 때문에, 식물은 덩이줄기 대신 잎과 줄기만 키우며 10월 서리가 내릴 때까지 수확을 미뤘어요. 긴 낮에도 덩이줄기를 맺는 개체를 골라내는 데 수십 년이 걸렸고, 나중에는 여름 낮이 유럽과 더 비슷한 칠레 남부의 품종이 도움이 됐어요.

왕들은 왜 감자를 밀어붙였을까

덩이줄기에는 전쟁 중에 중요한 특성이 2가지 있어요. 땅속에 묻혀 있어서 밭과 함께 태울 수도 없고 기병에게 짓밟힐 수도 없어요. 게다가 같은 면적에서 곡물보다 더 많은 먹거리를 내죠. 그래서 감자는 위에서부터, 칙령으로 보급됐어요.

18세기 중반 프로이센 왕은 처벌을 내리겠다고 위협하며 감자를 심으라고 명령했어요. 프랑스에서는 약제사 앙투안 파르망티에가 포로로 잡혀 있을 때 감자를 알게 된 뒤 감자 보급에 나섰어요. 낮에는 지키고 밤에는 경비를 세우지 않았다는 밭 이야기가 자주 전해지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많지 않아요. 러시아에서는 1765년에 '땅의 사과'를 재배하는 법을 각 지방에 보냈고, 1840년대에는 국유 마을 곳곳에서 감자 폭동이 일어났어요.

1700-1900년 구세계 인구 증가의 약 4분의 1 - 감자의 기여도를 추정한 값

값싼 열량은 인구 구조를 바꿔요. 이 4분의 1은 측정값이 아니라 경제학자들이 계산한 모형이지만,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분명해요. 척박한 땅에서도 안정적으로 수확되는 음식은 한 마을이 먹여 살릴 수 있는 사람 수의 한계를 높여요.

이면: 모두가 한 품종에 의존하다

안데스의 다양한 감자 중 유럽에 들어온 건 극히 일부였고, 유럽의 밭에는 수백 년 동안 거의 똑같은 식물들이 심겼어요. 그 정도가 가장 심했던 곳은 아일랜드였어요. 가장 가난한 소작농에게 감자는 곁들임 음식이 아니라 식단의 바탕이었죠.

월화수목금토일

1845년 이전 아일랜드 최빈층 소작농의 식탁: 일주일 내내 감자

1845년 유럽에 감자 역병이 들어왔어요. 땅속에 있는 덩이줄기를 바로 검게 만드는 병이었죠. 감자가 여러 음식 중 하나였던 곳에서는 흉년이 들었어요. 하지만 감자가 곧 음식이었던 아일랜드에서는 기근이 시작됐어요. 약 10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또 약 100만 명이 바다 건너로 떠났어요. 문제는 감자가 아니라 한 작물과 거의 한 품종에 의존한 선택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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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감자가 구세계 인구 증가에 기여한 정도에 대한 경제학적 추정(2011), 감자의 광주기성에 관한 연구, 1845-1849년 아일랜드 대기근의 역사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