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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는 왜 밀랍으로 봉인했을까

Miqo 편집팀 · 출처 1개

봉투는 없고, 종이 한 장이 전부였어요

봉투가 생기기 전에는 편지와 겉을 감싸는 부분이 같은 종이 한 장이었어요. 종이를 특별한 방식으로 접고, 때로는 종이에 칼집을 낸 뒤 같은 종이에서 잘라 낸 띠를 그 사이로 끼워 밀랍을 부었죠. 그러면 훼손하지 않고는 열 수 없는 봉투 같은 것이 완성됐어요.

  1. 쓰고 접어요. 글은 안쪽에 들어가고, 바깥쪽에는 빈 면이 남았어요. 주소는 그곳에 적었죠.

  2. 묶어 고정해요. 종이 띠나 실을 칼집 사이로 끼워 종이 꾸러미를 단단히 묶었어요.

  3. 밀랍을 부어요. 밀랍 한 방울이 묶은 부분을 덮고 몇 초 안에 굳었어요.

  4. 자국을 찍어요. 인장 반지나 인장 틀로 개인의 표식을 밀랍에 눌러 찍었어요. 같은 반지 없이는 똑같이 재현할 수 없었죠.

접는 방식은 얼마나 안전한지에 따라 달랐고, 역사가들은 지금도 이를 분석하고 있어요. 때로는 말 그대로 분석하죠. 보존된 미개봉 편지를 펼치지 않고 단층촬영기로 읽는 법을 알아냈거든요. 편지의 구조를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서예요.

✕ 오해

밀랍 봉인은 편지를 남의 눈으로부터 지켜 줬어요.

✓ 사실

밀랍 봉인은 읽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라, 몰래 읽지 못하게 했어요. 누구나 편지를 열 수는 있었지만, 봉인 자국을 온전하게 남긴 채 원래대로 되돌릴 수는 없었죠.

서명 대신 봉인

봉인 자국에는 또 다른 역할도 있었어요. 누가 보낸 편지인지 확인해 줬죠. 글을 쓰거나 필체를 대조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던 사회에서 밀랍에 찍힌 개인의 표식은 발신자를 확인하는 수단이었어요. 인장이 새겨진 반지는 남의 손에 맡기지 않았고, 주인이 죽은 뒤 없애 버리는 경우도 많았어요.

여기서 법적 효력도 생겼어요. 해당 인물이나 기관의 봉인이 찍혀 있으면 문서는 유효한 것으로 여겨졌죠. 봉인을 위조하는 일은 서명을 위조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별도의 중범죄였어요.

색과 재료도 의미를 전했어요. 붉은 밀랍은 일상적인 용도로 여겨졌고, 검은 밀랍은 애도할 때 사용했으며, 특정 색은 기관별로 정해져 있었어요. 받는 사람은 편지를 열기도 전에 편지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었죠.

이 모든 것은 꽤 빠르게 사라졌어요. 공장에서 만든 봉투와 접착식 덮개가 등장하면서 복잡한 구조를 만들 이유가 없어졌고, 신원을 확인하는 역할은 서명과 정식 서식으로 넘어갔어요. 봉인은 장식이자 의례적인 표식으로 남았죠.

스스로 확인해 보세요1 / 2

봉인된 편지를 열었다는 사실을 왜 숨길 수 없었을까요?

출처

  1. 편지를 접고 봉인하는 방식은 물질문화사에서 별도의 연구 분야로 다뤄져요. 2021년에는 개봉하지 않은 17세기 편지를 엑스선 단층촬영으로 읽어 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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