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디우스의 이야기
눈먼 예언자 티레시아스는 나르키소스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그 아이는 자기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늙을 때까지 살 거라고요. 보통은 자신을 알라고 하지, 알지 말라고 하지는 않으니 이상한 예언이죠. 그런데 이 예언은 글자 그대로 이루어져요.
나르키소스는 자신을 사랑하는 모든 이를 거부해요. 그중에는 다른 이의 마지막 말만 되풀이할 수 있는 님프 에코도 있었죠. 거절당한 한 연인은 신들에게 벌을 내려 달라고 빌어요. 그가 사랑하되 응답받지 못하게 해 달라고요. 벌은 거울이 아니라 응답받지 못하는 사랑이었어요.
- 예언자기 자신을 알면 죽게 된다. '자신을 사랑하면'이 아니에요.
- 에코에코는 먼저 말을 꺼낼 수 없고, 다른 이의 말을 되풀이할 뿐이에요. 같은 이야기 속 또 하나의 응답받지 못하는 사랑이죠.
- 물그는 얼굴을 향해 손을 뻗고, 얼굴은 손길이 닿자 흩어져요. 매번 그렇게요.
- Iste ego sum'이 사람이 나다.' 나르키소스는 결국 그 사실을 알아차려요. 하지만 그것도 그를 구하지는 못해요.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빠지는 대목이 바로 여기예요. 라틴어 문장 'iste ego sum'은 생의 마지막 순간이 아니라 장면의 중간에 나와요. 알아차린 뒤에도 끌림은 남았어요. 그다음 그는 자신이 누구에게 끌리는지 이미 알면서도 물가에 누워 있어요.
나르키소스는 자신이 누구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줄곧 자기 모습을 감탄하며 바라봤다.
처음에는 물에 비친 모습을 낯선 사람으로 착각했고, 그다음 자기 자신임을 알아봤어요. 그런데도 물에서 떨어지지 못했죠. 안다고 해서 욕망이 꺼지는 건 아니에요.
왜 알아도 끌림은 사라지지 않을까
물에 비친 모습은 완벽한 대화 상대인 동시에 텅 빈 공간이에요. 즉시 반응하고, 모든 움직임을 되풀이하고, 한 번도 반박하지 않지만 자기 것은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죠. 만남 없이 확인만 받는 거예요.
끌림은 바로 이 결핍을 먹고 자라요. 살아 있는 사람은 언젠가 '그래' 또는 '아니'라고 말하고, 그러면 기다림은 끝나요. 하지만 물에 비친 모습은 어느 쪽도 말하지 않아요. 그래서 이야기는 끝날 수 없고, 중간에 끊길 뿐이에요.
즉시 반응하고, 나를 되풀이하고, 절대 거절하지 않지만 자기 것은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아요.
시간을 두고 반응하고, 반박하고, 거절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그 사람의 '그래'가 의미를 갖는 거예요.
이 이름이 의학 용어에 들어간 건 1890년대 말이 되어서였어요. 의사들은 나르키소스를 자기 자신의 이미지에 빠진 상태를 설명하는 편리한 은유로 사용했고, 1914년 프로이트가 별도의 저서인 '나르시시즘 입문'으로 이 용어를 정착시켰죠. 의미는 응답받지 못하는 사랑에서 자기애로 옮겨 갔고, 학교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들도 새로운 의미에 맞춰 바뀌었어요. 하지만 오비디우스가 쓴 내용은 달라요.
나르키소스는 자신을 알아본 뒤 왜 물을 떠나지 못했을까요?
자기 모습에 끌리는 마음에서 벗어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될까요?
출처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제3권.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신화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완전한 서술이에요. 'iste ego sum'이라는 문장은 결말보다 훨씬 앞에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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