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상태의 나와 유혹에 빠진 나는 서로 다른 사람이에요
배부른 나는 배고픈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푹 잔 나는 지친 나를 이해하지 못해요. 심리학자들은 이를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 사이의 공감 격차라고 불러요. 평온할 때는 나중에 무언가를 얼마나 강하게 원하게 될지 온전히 상상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월요일에 한 약속이 금요일이 되면 남의 약속처럼 느껴져요.
여기서 불편한 결론이 나와요. 의지력에 기대는 건 좋은 전략이 아니에요. 의지력이 가장 적을 때 바로 필요하니까요. 오디세우스는 절벽 앞에서 자신과 논쟁하지 않았어요. 미리 논쟁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만들었죠.
유혹의 순간을 위해 의지력을 단련하지 마세요. 선택하기 쉬울 때 선택의 순간 자체를 없애세요.
오늘날에는 어떻게 나타날까요
방법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돛대만 달라졌을 뿐이죠. 월말이 아니라 월급날에 저축으로 자동 이체되는 돈. 집에 없어서 한밤중에 먹을 수 없는 음식. 아침에 스스로 정한 한도를 넘으면 게시물 목록을 차단하는 앱.
모든 방법의 원리는 같아요. 욕구와 행동 사이에 장애물을 세우고, 욕구가 생긴 순간 그 장애물을 치우는 일을 그냥 충동을 참는 것보다 어렵게 만드는 거예요. 장애물은 거창할 필요 없이 몇 분이면 충분해요. 보통은 매듭을 풀기도 전에 파도가 먼저 지나가거든요.
- 좋은 행동은 자동화하세요. 저절로 일어나는 일에는 결정이 필요 없어요.
- 유혹을 완전히 없애려 하지 말고 쉽게 손이 닿지 않게 하세요. 1분만 지연돼도 충분해요.
- 미리, 소리 내어 결정하세요. 정확히 무엇을 언제 할지 정하는 거예요.
-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세요. 자신에게 한 약속보다 다른 사람에게 한 약속을 깨기가 더 어려워요.
생산성 조언보다 신화가 더 솔직하게 보여주는 반대쪽 면도 있어요. 오디세우스는 결국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쳤고, 밧줄은 더 단단히 조여졌어요. 이 방법이 유혹을 즐겁게 만들어주지는 않아요. 그저 유혹이 당신 대신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할 뿐이죠. 그래도 결국 견뎌내야 해요.
그래서 이런 방법은 드물게, 꼭 필요한 곳에만 쓸 때 가장 잘 작동해요. 열 가지 영역에서 한꺼번에 자신을 묶을 수는 없어요. 그러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자신의 제한에 부딪히는 삶이 되고 말아요. 이미 내가 무너질 걸 확실히 아는 곳에만 돛대가 필요해요.
자신의 세이렌을 알고 있다면 무너질 위험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요?
모든 영역에서 자신을 제한하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출처
- 평온한 상태와 흥분한 상태 사이의 공감 격차는 조지 뢰벤스타인이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설명했어요. 경제학에서는 자기 절제를 위한 방법을 구속 장치라고 불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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