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생각이 누군가 내게 하는 말처럼 들리는 이유
안 좋은 날,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봐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서는 거야’, ‘정신 차려’, ‘또 모든 일을 어중간하게 하네’. 왜인지 자신에 대한 생각이 자신을 ‘너’라고 부르고 있어요. 머릿속에 논평하는 누군가가 따로 있는 것처럼요. 서술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아요. 호소가 그렇게 만들어져요.
이런 형태가 어디서 오는지는 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가 설명했어요. 3-5세 아이는 자신이 하는 일을 소리 내어 말해요. “자, 이제 빨간색, 조심해, 쏟지 마.” 이 말은 종종 아이 자신의 말이 아니에요. 어른의 표현과 억양을 아이가 자신에게 적용하는 거예요. 학교에 갈 나이가 가까워지면 소리 내는 말은 중얼거림과 속삭임이 되었다가, 이내 소리 없이 이루어져요. 그래도 많은 아이에게서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들리죠. 명령하는 사람과 따르는 사람, 두 역할은 모두 남아요. 이제 한 사람의 머릿속에 있을 뿐이에요.
무언가를 하면서 소리 내어 혼잣말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 유아기의 정상적인 모습이에요. 관찰자들은 거의 모든 아이에게서 이를 발견해요
그래서 내면의 말은 짧고 명령조예요. 따져 보기보다 지시해요. 지시에서 자라났기 때문이에요.
한마디가 규칙이 되는 과정
아이는 장면 전체를 기억하지 않아요. 대신 자신에 대한 결론을 내려요. 내게 이렇게 말한다면, 내게 뭔가 문제가 있나 보다 하고요. 가게의 줄, 낯선 사람들의 시선, 지친 엄마라는 개별적인 상황은 하나의 일반적인 규칙으로 압축돼요.
그다음부터 그 규칙은 처음의 장면 없이도 살아 있어요. 그래서 어른이 된 뒤에는 그 감정이 생긴 에피소드보다 감정 자체를 더 자주 기억해요. “지어내지 마”에서는 내 감각을 믿으면 안 되고 먼저 다른 사람에게 확인해야 한다는 믿음이 남아요. “남들이 뭐라고 하겠어”에서는 늘 남의 눈에 보이고, 어떤 상태든 표정을 관리해야 한다는 믿음이 남고요. “더 잘할 수도 있었잖아”에서는 한 일은 인정받지 못하며 기준은 늘 지금보다 조금 더 높다는 믿음이 남아요.
생각할 겨를이 없을 때 완성된 규칙이 떠올라요. 피곤할 때, 서두를 때, 다른 사람의 평가를 받을 때요. 또 흔한 순간은 직접 아이에게 무언가 말하다가 내 목소리에서 다른 사람의 억양을 들을 때예요. 한 가지 덧붙이면, 특정 어린 시절의 말이 성인이 된 뒤 내면의 비판자가 된다는 사실은 주로 치료 중인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알려졌고, 이 연결의 정확한 강도는 알 수 없어요. 반면 말이 밖에서 안으로 옮겨가는 과정 자체는 아이들을 관찰하면 직접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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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내면의 말이 외부의 말에서 자라난다는 생각: 레프 비고츠키, 『사고와 언어』, 1934. 로라 버크는 1980-90년대에 과제를 하는 아이들의 소리 내는 말을 체계적으로 관찰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