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재판을 실제로 시작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유럽에서 열린 재판 대부분은 교회 법정이 아니라 일반 세속 법정에서 진행됐고, 고발로 시작됐어요. 위에서가 아니라 옆에서요. 이웃 여성이 찾아와 가축이 2년째 앓고 있는데 범인은 바로 이 여자라고 말하는 식이었죠. 전문 수사관들은 마을 사람들보다 회의적일 때도 있었어요. 1610년 큰 사건이 일어난 뒤 스페인 종교재판소는 증거 요건을 강화했고, 그곳에서는 주술 혐의로 처형되는 일이 거의 사라졌어요.
16-17세기 영국의 재판을 연구한 역사학자들은 반복해서 나타나는 이야기를 발견했어요. 너무 비슷하게 전개돼서 이름까지 붙었죠. 바로 거절당한 부탁 모델이에요.
부탁. 가난한 이웃 여성이 우유나 소금, 불가에 몸을 녹일 자리를 부탁하러 와요.
거절. 부탁을 거절당한 여성은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돌아가요.
불행. 몇 주 뒤 아이가 아프거나 소가 쓰러져 죽어요.
고발. 집주인이 재판관에게 가서 자신이 거절한 여성을 지목해요.
그다음 작동하는 건 논리가 아니라 불편한 마음이에요. 부탁을 거절한 사람은 자신이 이웃답지 않게 행동했다는 걸 기억해요. 가난한 사람을 돕는 건 의무로 여겨졌는데, 그 의무를 저버린 건 자신이었으니까요. 고발은 역할을 뒤집어요. 이제 잘못한 사람은 그녀가 되는 거죠. 이 모델은 영국의 시골 마을에는 잘 들어맞지만, 독일 도시의 재판에는 덜 들어맞아요.
왜 하필 그 여성을 지목했을까
고발은 갑자기 일어나는 일이 드물었어요. 기록을 보면 고발이 제기될 무렵에는 다툼이 수년째 이어진 경우가 많았어요. 오래된 경계 분쟁이나 장례식에서의 모진 말 같은 일이었죠. 평판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졌고, 고발은 그 평판에 이름을 붙였을 뿐이에요. 반격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표적이 됐어요. 역사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피고인의 약 4명 중 3명은 여성이었고, 대체로 나이가 많거나 다른 사람의 호의에 의존해 살아가던 이들이었어요.
다툼과 불행이 연결된 근거는 시간 순서 하나뿐이었어요. 소가 왜 죽었는지는 아무도 조사하지 않았어요. 그저 다툼 뒤에 일어났다는 사실이면 충분했죠. 그리고 며칠이 적게 지날수록 의심도 줄어들었어요.
계산이 아닌 패턴이에요. 불행이 다툼에서 멀리 일어날수록 "그 여자가 원인이었다"는 증언은 약해져요.
법정에서는 두 번째 동력이 작동했어요. 고문을 받던 피고인에게 주변에서 누구를 봤는지 물었고, 피고인은 자신이 다투던 사람들을 지목했어요. 하나의 고발이 열두 건으로 불어났죠. 1620년대 말 독일 도시에서는 사건이 파도처럼 이어졌고, 결국 명단에는 도시 상류층 사람들까지 올라갔어요.
고발의 물결은 왜 잦아들었을까
대규모 재판이 끝난 건 사람들이 해로운 주술을 더는 믿지 않게 돼서가 아니었어요. 그 뒤로도 오랫동안 믿었죠. 대규모 재판은 지역 법원이 최종 판단을 내리는 곳이 아니게 된 지역에서 끝났어요. 파리 고등법원은 주술 혐의에 따른 사형 선고를 자신이 재심하도록 했고, 그중 대부분을 뒤집었어요. 상급 기관의 감독, 고문 제한, 엄격한 증거 기준이 마련되자 이웃의 고발은 다시 이웃 간 다툼으로 돌아갔어요.
1560-1630년 정점
연도별 재판 수: 1560년과 1630년 사이에 정점
거절당한 부탁 뒤에 이웃 여성이 주술 혐의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술 혐의 고발의 물결을 멈추는 데 도움이 된 것은 무엇일까요?
출처
- 재판과 처형 건수의 추정치는 Brian Levack의 종합 연구를 따랐고, "거절당한 부탁" 모델은 Keith Thomas와 Alan Macfarlane의 연구를 따랐어요. 파리 고등법원의 관행은 해당 법원의 항소를 다룬 연구를 참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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