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자주 법정에 선 동물은 돼지였어요
이런 재판 기록은 주로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에서 나왔고, 모두 합쳐 약 200건이 모였어요. 피고 가운데는 돼지가 가장 많았는데, 이유는 아주 일상적이었어요. 돼지는 마을을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먹었고, 아기들은 혼자 남겨지는 일이 많았거든요.
절차는 사람을 재판할 때와 다르지 않았어요. 동물을 체포해 사람과 같은 감옥에 가두고, 변호인을 선임하고, 증인을 부르고, 기록을 남겼어요. 1457년 부르고뉴의 한 마을에서는 돼지 한 마리가 아이를 죽인 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어요. 공범으로 함께 재판받은 새끼 돼지 6마리는 풀려났고요. 너무 어렸고, 가담했다는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처형은 공개적으로 진행됐어요. 여기서 모든 의미가 드러나요. 1386년 노르망디의 팔레즈에서는 돼지 한 마리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교수형을 당했고, 집행관은 사람을 처형할 때와 같은 보수를 받았어요. 처형 전에 사람 옷을 입혔다는 이야기는 후대의 전승에서 나온 거예요. 피고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어요. 구경꾼들은 모든 것을 이해했죠.
체포. 동물을 주인에게서 데려와 도시 감옥에 가뒀고, 때로는 공동 수감실에 넣었어요.
변호. 법원이 변호사를 선임하면, 변호사는 사람의 재판처럼 재판권과 기한, 증거를 두고 다퉜어요.
심리. 이웃과 아이의 부모, 목자 같은 증인들을 심문했어요.
판결. 교수형이나 화형이었고, 반드시 광장에서 집행했어요.
쥐와 애벌레는 교회 법정에 소환됐어요
해충은 잡을 수도 처형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교회 법정이 맡았어요. 쥐와 바구미, 애벌레에게 소환을 통보하고, 밭에서 바로 낭독했어요. 변호인도 선임했죠. 출석하지 않으면 저주를 내리고 땅에서 떠나라고 명령했어요. 판결은 조건부인 경우가 많았어요. 떠나되, 교구 주민들은 십일조를 성실히 내라는 식이었죠. 이런 논리에서 흉작은 사람들에 대한 벌이었고, 절차는 그 벌을 다시 사람들에게 돌려보냈어요.
변호는 진지하게 이뤄졌어요. 법률가 바르톨로메 샤세뇌는 16세기 초 오툉에서 쥐를 변호한 일로 유명해졌어요. 먼저 소환장이 모든 교구에 보내지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했고, 이어 의뢰인들이 안전하게 출석할 수 없다는 점을 증명했죠.
제 의뢰인들이 출석하지 않은 건 고집을 부려서가 아닙니다. 법정으로 가는 길에 고양이들이 매복하고 있으니까요. 소환된 사람에게는 다치지 않고 도착할 권리가 있습니다.
동물 재판은 왜 사라졌을까요
동물 재판은 16세기에 정점에 이르렀고, 18세기 말에는 거의 사라졌어요. 무너진 건 자비가 아니라 제도였어요.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이해 능력이 필요해졌거든요. 동물이 금지된 일을 이해할 수 없다면 재판할 이유도 없었고, 사건은 제대로 지켜보지 못한 주인에게 넘어갔어요. 돼지는 피고에서 재산이 됐고, 재판은 부주의를 둘러싼 분쟁이 됐죠.
13세기부터 18세기까지, 알려진 재판이 세기별로 어떻게 분포하는지 보여줘요. 정확한 집계가 아니라 남아 있는 사건 기록의 양상을 나타낸 거예요. 일부 기록은 사라졌거든요.
동물을 공개적으로 재판하고 처형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동물 재판은 왜 거의 사라졌을까요?
출처
- 주요 사건 모음은 E. P. Evans, "The Criminal Prosecution and Capital Punishment of Animals"(1906)입니다. 샤세뇌의 발언은 후대의 전승을 바탕으로 옮긴 것이며, 일부 사건은 내용이 서로 다른 후대 기록으로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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